만날 때마다 대화의 절반이 다른 사람 얘기인 친구가 있어요. 그날 자리에 없는 사람이 화제가 되는 걸 보면, 문득 '내가 없는 자리에서는 내 얘기를 하겠구나' 싶어 서늘해지기도 해요. 그렇다고 오래된 친구를 끊어내자니 그건 아닌 것 같고, 맞장구를 치자니 나까지 험담에 동참하는 기분이 들어요. 험담 자체보다, 그 말을 계속 듣고 있는 내 마음이 조금씩 지쳐가는 상황이에요.
성장형에게 남 얘기는 자기 위치를 재는 하나의 방식일 때가 많아요. 옆 나무의 키를 곁눈질하며 내 뿌리가 얕은 건 아닌지 조바심 내는 마음이, 남 얘기라는 모양으로 새어 나오는 거예요. '요즘 너는 뭐 해보고 싶어?'처럼 화제를 친구 자신의 새순 쪽으로 슬쩍 돌려보면, 대화의 방향이 부드럽게 바뀌기도 해요.
표현형은 마음에 고인 열기를 안에 오래 담아두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서운함이나 억울함이 정제되지 않은 불꽃처럼 말로 튀는 것이지, 누군가를 몰래 해치려는 마음과는 결이 달라요. 험담의 대상 말고 친구의 감정에만 온기를 건네보면, '그때 많이 서운했겠다' 한마디에 불길이 잦아들 때가 많아요.
안정형의 험담은 '우리는 같은 편인가'를 확인하는 신호일 때가 있어요. 같은 지층 위에 서 있다는 감각이 흔들릴 때, 바깥 사람 얘기로 안쪽의 단단함을 확인하고 다지려는 거예요. 판단에 동참하지 않으면서 '나는 네 편이야'라는 바닥만 분명히 해주면, 확인하려는 필요 자체가 줄어들기도 해요.
추진형의 남 얘기는 몰래 하는 뒷말이라기보다 날 선 평가에 가까워요. 어긋난 것이나 비효율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칼로 자르듯 판정을 내리는 게 입 밖으로 나오는 거예요. '그럼 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라고 물어보면, 칼끝이 사람이 아니라 해법 쪽으로 자연스럽게 방향을 틀곤 해요.
지혜형은 사람을 오래 지켜보며 깊이 관찰하고, 그 분석이 흘러나온 말이 험담처럼 들릴 때가 있어요. 강바닥을 읽듯 사람의 속을 읽고 나름의 결론을 담담히 말하는 것에 가까워요. 험담의 대상 대신 상황이나 일에 대한 생각을 물어 물길을 바꿔주면, 같은 깊이로 훨씬 편안한 대화가 흘러가요.
험담을 참고 듣는 것도, 친구를 나쁜 사람으로 결론짓는 것도 답은 아닐 거예요. 행동 아래 흐르는 속뜻을 읽고 나면, 나의 선은 지키면서 관계는 남겨두는 길이 보이기 쉬워요. 친구의 생년월일을 안다면, 그 말버릇이 어떤 결에서 나온 것인지 DECA에서 확인해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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