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줘야 하는 메일이 있어요. 밤마다 열어 보고, 답장 쓰는 칸까지 갔다가 닫아요. 조건을 비교하는 건 벌써 끝났는데도 결정이 안 돼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결이 재고 있는 건 연봉이나 안정이 아니에요. 이 길에서 나는 계속 자랄 수 있을까, 여기서 멈춰 버리는 건 아닐까. 성장형에게 가장 무서운 건 틀린 선택이 아니라 자람이 멈추는 선택이에요. 그리고 하나를 고르는 순간 다른 쪽의 가능성이 접힌다는 것도 알아서, 손이 오래 머뭇거려요.
그 머뭇거림은 결단력이 없다는 뜻이 아니에요. 뿌리가 물을 찾는 방식이 원래 그래요. 한 방향으로 곧장 가는 게 아니라, 여러 갈래를 조금씩 뻗어 보고 물이 있는 쪽을 남겨요. 지금 마음이 갈림길 앞에서 오래 서 있는 건, 각 길의 흙을 미리 만져 보는 중인 거예요. 그리고 하나 더. 나무는 한 방향을 골라 뻗은 뒤에도 거기서 다시 가지를 내요. 선택은 자라는 방향을 정하는 일이지, 자람 자체를 걸고 하는 내기가 아닐지도 몰라요.
밤에 또 그 메일을 열게 되면, 결론 대신 다른 걸 하나만 적어 보세요. 이 길에서 자라고 싶은 내 모습 한 줄, 저 길에서 자라고 싶은 내 모습 한 줄. 조건표보다 그 두 줄이 이 결에게는 더 정확한 지도예요. 그리고 오늘만큼은, '오늘은 정하지 않는다'를 오늘의 결정으로 삼아도 돼요. 며칠 흔들렸다고 해서 늦어지는 건 생각보다 적어요. 흔들리며 서 있는 시간도 갈림길의 흙을 읽는 시간이에요. 뿌리가 일하는 동안, 겉에서는 아무 일도 없어 보이는 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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