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모처럼 약속이 없어요. 소파에 누웠는데 십 분을 못 넘기고 폰을 들어요. 그냥 보는 영상은 아깝고, 뭐라도 남는 걸 봐야 할 것 같아서 강의나 다큐를 골라요. 쉬자고 마련한 시간이 어느새 또 하나의 할 일이 돼요. 저녁이 되면 이상하게 더 피곤하고, '오늘 하루를 날렸다'는 문장이 올라와요. 성장형의 혼자 시간은 자주 이런 모양이 돼요. 몸은 멈췄는데 마음은 계속 뭔가를 심으려고 해요. 쉼이 쉼으로 끝나 본 적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해요.
쉬지 못하는 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에요. 이 결에게 멈춤은 곧 뒤처짐으로 번역되는데, 그 번역이 틀렸을 뿐이에요. 나무의 자람은 절반이 땅 밑에서 일어나요. 잎도 새순도 없는 시기에 뿌리는 더 깊이 내려가고, 그 깊이가 다음에 뻗을 높이를 정해요. 혼자 멍하니 있는 시간, 아무것도 심지 않는 시간은 자람의 반대편이 아니라 자람이 자리를 옮긴 시간일지도 몰라요. 보이는 곳에서 아무 일도 없는 것과, 아무 일도 없는 것은 달라요.
다음에 혼자인 시간이 오면, '뭐라도 남겨야 한다'는 마음이 켜지는 순간을 한번 지켜봐 주세요. 그 마음은 오래 이 결을 끌고 온 부지런한 마음이라 미워할 것도 없어요. 다만 하루의 끝에 하나만, 아무것도 남지 않는 한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해도 돼요. 배우지 않는 산책, 목적 없는 음악, 요약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 시간이 끝나고 다시 계획으로 돌아가도 돼요. 허락은 한 시간이면 충분해요. 그동안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것 같아도, 물은 뿌리까지 내려가는 데 원래 시간이 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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