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동창 모임이었어요. 누구는 이직했고, 누구는 가게를 열었고, 누구는 집을 옮겼대요. 자리에서는 진심으로 웃으며 축하했어요. 그런데 돌아오는 지하철, 어두운 창에 비친 얼굴을 보다가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았죠. 다들 어딘가로 옮겨 갔는데 나는 작년에도, 올해도 같은 자리인 것 같아서요. 안정형이 비교 앞에서 유독 아파하는 자리가 여기예요. 자신이 버티며 지켜온 것들은 땅처럼 눈에 잘 안 띄고, 남들이 이동한 거리만 선명하게 보이는 순간이요. 하지만 누군가를 받쳐 온 시간은 옆으로 퍼지지 않고 아래로 쌓여요. 지층처럼요.
땅의 시간은 이동 거리로 재지 않아요. 지층처럼, 같은 자리에서 겹겹이 쌓이는 방식으로 흘러요. 안정형의 결도 그래요. 한 자리에서 신뢰를 쌓고, 관계를 지키고, 무너지지 않는 일상을 만들어 온 시간은 지도 위의 이동으로는 표시되지 않아요. 그래서 남들의 속도와 나란히 놓으면 늘 손해 보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쌓임은 멈춤이 아니에요. 눈에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계속되고 있는 일이에요. 당신이 제자리라고 느끼는 그 자리는, 사실 몇 년 치의 시간이 눌려 담긴 자리일지도 몰라요.
비교를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요.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요. 대신 오늘 하나만, 세는 방향을 바꿔봐도 돼요. 남이 새로 시작한 것 말고, 내가 여태 지켜온 것 하나. 몇 년째 이어 온 관계여도 좋고, 꾸준히 해 온 일이어도 좋고, 무너뜨리지 않고 지켜 온 생활이어도 좋아요. 그걸 하나 세어 보는 거예요. 그 하나가 생각보다 금방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원래 바닥에 가까운 것일수록 눈에 늦게 들어와요. 옮겨 간 사람들의 소식만큼, 지켜 온 사람의 자리도 셈에 넣어줄 필요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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