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에서 다들 빙빙 돌리는 얘기를 먼저 꺼냈을 뿐인데, 공기가 잠깐 얼어붙었던 순간이 있죠. 집에 오는 길, 낮에 들은 '넌 말이 좀 세'라는 말이 자꾸 재생돼요.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누굴 깎아내리려던 것도 아닌데요. 이상한 건, 그런 말을 들은 날일수록 사과해야 할지 억울해해야 할지 몰라서 마음이 두 갈래로 찢어진다는 거예요. 미안함과 억울함 사이를 오가다가, 결국 '다음엔 그냥 말하지 말자'로 끝나는 밤이 있었을 거예요.
부딪혀 여는 사람의 말에는 포장이 없어요. 포장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포장이 상대의 시간을 뺏는다고 몸이 먼저 아는 결이라서요. 정면으로 말한다는 건 그 사람을 돌려 말해도 되는 상대가 아니라, 진짜 이야기를 나눌 상대로 여긴다는 뜻이에요. 칼이 정직한 도구인 것처럼, 추진형의 말은 방향을 숨기지 않아요. 그 정직함이 늘 환영받지는 못해도, 그게 미움이 아니었다는 사실만큼은 스스로 헷갈리지 않아도 돼요. 세게 말한 게 아니라, 곧게 말한 거예요.
말투를 통째로 바꾸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곧은 말은 이 에너지의 결이고, 그걸 꺾으면 말과 함께 마음도 줄어들어요. 대신 오늘만큼은, 곧은 말 앞이나 뒤에 방향을 한 줄 덧붙여봐도 돼요. '더 잘되면 좋겠어서 하는 말인데' 같은, 칼끝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려주는 한 줄이요. 칼을 무디게 만드는 게 아니라, 칼집을 먼저 보여주는 일에 가까워요. 그 한 줄이면 내 말은 그대로 곧고, 듣는 사람은 덜 놀라요. 마음까지 닫지는 않아도 되는 이유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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