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의 틀을 빌려 버블의 전개를 다섯 단계로 정리했어요. 이 순서를 알고 나면 400년 전 이야기와 20년 전 이야기가 같은 구조로 보이기 시작해요.
오스만에서 건너온 튤립은 당시 유럽에 없던 새로운 꽃이었어요(변위). 특히 바이러스 감염으로 꽃잎에 독특한 무늬가 생긴 품종은 재현이 어려워 희소성이 컸죠. 알뿌리를 미리 사고파는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가격은 가파르게 올랐고, 정원과 무관한 사람들까지 거래에 들어왔어요. 그러다 1637년 초 어느 경매에서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가격은 순식간에 무너졌어요. 다만 균형 있게 덧붙이면, 최근 연구들은 이 사건이 흔히 이야기되는 것만큼 네덜란드 경제 전체를 무너뜨리지는 않았다고 봐요. 후대에 극적으로 각색된 부분이 있다는 거죠.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계속 인용되는 건, 다섯 단계가 가장 순수한 형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에요.
남해회사는 정부의 빚을 회사 주식으로 바꿔주는 구조를 내세워 주가가 급등했어요. 무역 독점권이라는 그럴듯한 이야기와 유력 인사들의 참여가 신뢰를 더했죠. 이 국면에서 아이작 뉴턴의 일화가 자주 인용돼요. 그는 초기에 이익을 실현하고 빠져나왔지만, 주가가 계속 오르자 더 큰 금액으로 다시 들어갔다가 큰 손실을 봤다고 전해져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는 말이 그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 발언인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다만 이 일화가 400년째 회자되는 이유는 분명해요.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지성도 도취 단계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는 것.
1920년대 미국에서는 적은 돈으로 주식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신용거래가 크게 늘었어요. 상승기에는 수익을 키워주지만 하락기에는 반대로 작용하죠. 1929년 대폭락 이후의 충격이 그토록 컸던 배경에는 이 빚의 구조가 있었어요. 1980년대 후반 일본에서는 부동산과 주식이 함께 올랐어요. 도쿄 도심의 땅값을 두고 회자되던 비유들이 그 시기의 분위기를 보여주죠. 이 국면 역시 은행 대출이 자산 가격을 밀어올리고, 오른 자산이 다시 담보가 되어 대출을 늘리는 순환을 타고 있었어요. 정점 이후 일본은 길고 느린 조정을 겪었어요. 두 사례의 공통점은 자산의 종류가 아니라, 빚이 상승과 하락을 함께 증폭시켰다는 점이에요.
인터넷은 진짜 변화였어요. 그래서 이 사례가 특히 중요해요. 버블은 가짜 위에만 생기는 게 아니라, 진짜 변화 위에 가격이 앞서 나갈 때도 생긴다는 걸 보여주니까요. 당시에는 아직 이익을 내지 못하는 회사들에도 높은 가격이 매겨졌고, 전통적인 잣대는 낡은 것으로 취급됐어요. 2000년을 지나며 가격은 크게 조정됐고 많은 회사가 사라졌어요. 그런데 이야기의 뒷부분이 더 흥미로워요. 살아남은 소수의 기업들은 이후 실제로 세상을 바꿨거든요. 즉 기술에 대한 전망이 틀렸던 게 아니라, 그 전망이 실현되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그 사이에 지불한 가격이 문제였던 거예요.
알려주는 것은 이래요. 구조는 반복되고, 빚은 양쪽으로 작용하며, "이번엔 다르다"는 설명은 정점 근처에서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린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참여자가 밀려드는 시기일수록 이야기가 숫자를 앞선다는 것. 반면 역사가 알려주지 않는 것도 분명해요. 지금이 몇 단계인지는 알려주지 않아요. 버블은 대체로 끝난 뒤에야 버블이었다고 확인되는 개념이고, 붕괴 없이 완만하게 식는 경우도 있어요. 정점을 맞히려는 시도가 반복해서 실패해 온 이유예요. 그래서 이 지식의 쓸모는 시장을 판정하는 데 있지 않고 자기를 점검하는 데 있어요. 내가 이 자산에 들어온 이유가 그 자산을 이해해서인지 아니면 오르고 있어서인지, 지금 쓰고 있는 돈이 빌린 돈인지, 반토막이 나도 생활이 유지되는지. 이 세 질문에 답할 수 있으면 몇 단계인지 몰라도 됩니다.
출처·참고: 찰스 킨들버거 『광기, 패닉, 붕괴』, 각국 중앙은행 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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