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고민을 두 시간 들어주고 돌아오는 저녁이 있어요. 사실 나도 요즘 힘든 일이 있었는데, 말할 자리가 나지 않아서 웃는 얼굴로만 앉아 있다 왔어요. 너는 뭐 고민 없지, 라는 말에 나야 뭐, 하고 넘기고 나면 버스 창밖을 보다가 문득 서운함이 올라와요. 서운한 상대가 누구인지도 분명하지 않은 채로요. 늘 밝은 자리에 있던 사람은 힘들다는 말을 꺼낼 차례를 좀처럼 배정받지 못해요. 괜찮아 보이는 일이 너무 오래 성공해버린 탓이에요. 그날의 서운함은 그렇게 주소 없이 쌓여가요.
그건 마음이 좁아서 생기는 서운함이 아니에요. 표현형의 온기는 먼저 건너가는 성질이 있어요. 상대의 그늘을 알아보는 눈이 빠르다 보니 언제나 비추는 쪽에 서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빛은 바깥을 밝히는 동안 제 발밑을 보지 못해요. 등을 켜면 등 아래가 가장 어두운 것처럼요. 사람들이 내 그늘을 못 본 건 무심해서라기보다, 내가 늘 밝은 쪽만 보여주는 데 성공해왔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다정함이 오래 쌓이면 그게 기본값인 줄 아는 사람들이 생겨요.
모두에게 힘들다고 말할 필요는 없어요. 하루의 끝에 하나만, 실은 나 요즘 좀 힘들었어, 라는 문장을 한 사람에게만 건네봐도 돼요. 반응이 어색해도 괜찮아요. 늘 밝던 사람의 그늘은 처음엔 낯설게 받아들여지기 마련이니까요. 중요한 건 상대의 반응이 아니라, 괜찮은 척 바깥으로 한 발 나와봤다는 사실이에요. 그늘을 한 번 보여준다고 해서 그동안의 밝음이 거짓이 되는 건 아니에요. 비추기만 하던 사람이 비춰지는 자리에 앉는 데에도 연습이 필요해요. 그 연습은 한 문장이면 충분히 시작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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