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말할걸, 하고 몇 번이나 되짚게 되는 밤이 있죠. 서운하다는 한마디가 어쩐지 어려워서 그냥 웃어넘겼는데, 삼킨 말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 한구석에 그대로 남아 있어요.
서운함을 말하는 일이 유난히 어려운 결이 있어요. 그 마음을 헤아려 다섯 가지 결에게 편지를 한 통씩 써 두었어요. 내 결에게 온 편지에서, 못다 한 말을 대신 건네는 문장을 만나 보세요.
서운하다는 말이 목까지 왔는데 끝내 삼켰지요. 관계가 깨질까 봐서라기보다,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우리가 몇 걸음 물러나는 것 같아서요. 여기까지 키워 온 흐름을 끊고 뒤로 가는 일은, 앞으로만 가고 싶은 당신에게 다툼이 아니라 퇴보로 읽혀요. 그래서 서운함을 성장의 반대말로 분류하고 조용히 접어 두었을 거예요. 그런데 나무를 보면 곧게만 자란 줄기는 없어요. 마디가 지는 자리, 잠깐 방향을 트는 자리마다 나무는 더 단단해지고, 그 마디가 있어야 다음 가지가 나올 자리도 생겨요. 서운함을 꺼내는 일은 관계를 되돌리는 게 아니라 마디 하나를 만드는 일이에요. 말한 뒤의 잠깐의 어색함도 후진이 아니라 뿌리가 자리를 고쳐 잡는 시간일지도 몰라요. 다음번에는 반 발짝 물러나는 걸 감수하고, 그 말을 꺼내 보기로 해요.
서운했는데, 그 말을 결국 삼켰네요. 웃으며 넘기고 돌아서는 길에 마음만 혼자 뜨거워졌을 거예요. 표현형에게 하지 못한 말은 유독 오래, 유독 뜨겁게 남아요. 밖으로 흐르는 게 이 결의 숨구멍인데, 그 길이 막히면 열기가 안에서 맴돌거든요. 그 자리에서 말을 누른 건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였을 거예요. 내 말이 생각보다 뜨겁게 나갈까 봐 조심한 것이기도 하고요. 집에 와서도 그 장면이 되살아나고 삼킨 말이 자꾸 목까지 올라오는 건 속이 좁아서가 아니라, 원래 바깥으로 나가야 할 온기가 출구를 찾고 있는 거예요. 그 말을 지금 그 사람에게 꼭 전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대신 어디로든 내보내 주세요. 종이에 적어도 되고, 빈 방에서 소리 내어 말해 봐도 돼요. 듣는 사람이 없어도, 말은 밖으로 나온 것만으로 절반은 식어요.
하고 싶은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가, 결국 도로 내려간 하루였죠. 그 말을 삼키고 돌아서는 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을 거예요. 밤이 된 지금도 그 말은 몸 어딘가에 그대로 얹혀 있고요. 안정형이 서운함을 잘 꺼내지 못하는 건 마음이 작아서가 아니에요. 관계의 바닥이 흔들리는 걸 가장 견디기 어려워하는 결이라, 내 말 한마디가 그 바닥에 금을 낼까 봐 먼저 삼키는 거예요. 땅이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받아 안듯이요. 그 조용함 덕분에 곁의 사람은 오늘도 아무것도 몰랐을 테고요. 다만 받아 안은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아래에 고여요. 서운함도 층층이 쌓이면 지층처럼 굳어서, 나중에는 어디서부터였는지 짚기 어려워지고요. 그러니 오늘 삼킨 그 문장이 그냥 없던 일이 되지는 않았으면 해요. 부치지 않아도 되니까, 그 말을 어딘가에 한 줄만 적어두어도 돼요.
할 말을 삼킨 채 돌아선 하루가 목에 걸려 있죠. 그 장면이 자꾸 되돌아오고, 그때 왜 말하지 못했을까 싶고요. 웬만한 말은 곧장 하는 당신이 그 말만은 못 했다면, 그건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날을 눕힌 거예요. 추진형의 말은 벼려진 칼을 닮아서, 서운함처럼 여린 감정을 실으면 마음보다 깊게 벨까 봐 스스로 멈추게 되거든요. 아무 관계에서나 그러는 것도 아니에요. 지키고 싶은 사람 앞에서만 날이 눕죠. 그러니 오늘의 침묵은 무른 게 아니라 조심한 거예요. 다만 삼킨 말이 안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는 당신에게만 들리니까, 그 말을 어딘가에 내려놓을 자리는 필요해요. 보내지 않을 문장으로, 종이 위에 먼저 적어 봐요. 상대에게 건네는 일은 날이 충분히 눕은 다음이어면 돼요.
하고 싶은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가, 결국 삼켜진 채로 하루가 끝났죠. 돌아오는 길에 그 장면을 몇 번이고 되감으면서, 그때 말할걸 하고 스스로를 탓했을 거예요. 말하지 못한 건 비겁해서가 아니에요. 당신의 말은 깊은 데서 길어 올려지는 말이라, 올라오는 데 시간이 걸려요. 얕은 데서 바로 퍼 올리는 말과는 애초에 속도가 달라요. 그 자리에서 바로 꺼내면 말이 마음보다 거칠게 나올 걸 알기에, 당신 안의 무언가가 먼저 멈춰 세운 거예요. 그건 참은 게 아니라 고른 거예요. 다만 삼킨 서운함은 사라지지 않고 안에서 조용히 차올라요.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없던 마음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전할지 말지는 물이 가라앉은 다음에 정하면 돼요. 오늘 밤은 아무도 보지 않을 종이에, 그 말을 한 번 적어 봐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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